5화
약 14분 · 총 6,878자

혈흔의 주소

주인공: 강도혁

공장 지대는 죽은 도시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를 찌르는 건 녹슨 철과 썩은 콘크리트 냄새. 도혁은 핸드폰 녹음 파일을 다시 재생했다. 민재 형의 목소리 뒤로 들렸던 그 기계음. 똑같았다. 바람에 삐걱거리는 철판 소리까지.

'여기가 맞아.'

폐공장 정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자물쇠가 끊어진 지 오래됐는지 체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도혁은 권총 안전장치를 풀고 안으로 들어섰다.

1층은 텅 비어 있었다.

먼지 쌓인 컨베이어 벨트, 깨진 유리창, 벽에 낙서처럼 남은 페인트 자국. 10년 전 이곳이 백호파 초기 거점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폐허였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발밑에서 뭔가 바스러졌다.

유리 조각이었다.

2층 복도는 더 어두웠다. 창문마다 합판이 덧대져 있어서 햇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도혁은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천천히 걸었다.

작업실 문이 보였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뭔가 반짝였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형님?"

대답은 없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발밑에서 또 유리 조각이 부서졌다. 바닥 한가운데, 핏자국 옆에 안경이 놓여 있었다.

민재 형의 안경.

도혁은 무릎을 꿇고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안경테는 정확히 반으로 부러져 있었고, 렌즈 한쪽에 핏방울이 말라붙어 있었다.

렌즈에 비친 건 일그러진 자기 얼굴이었다.

'이게 뭐야.'

손이 떨렸다. 안경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민재 형..."

주변을 둘러봤다. 피는 안경 주변에만 조금 묻어 있었다. 끌려간 흔적도, 몸싸움 흔적도 없었다. 그냥 안경만 덩그러니 바닥에.

'왜 안경만?'

도혁은 천천히 일어나 작업실 안을 수색했다. 녹슨 작업대, 쓰러진 의자, 벽에 걸린 낡은 달력. 2015년 3월에서 멈춰 있었다.

그때 천장 구석에서 빨간 불빛이 깜빡였다.

CCTV였다.

"뭐야, 이게 살아있어?"

전원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였다. 도혁은 재빨리 카메라 각도를 확인했다. 안경이 놓인 바닥이 정확히 화면 중앙에 잡힐 위치였다.

'누가 보라고 남긴 거야?'

등골이 서늘해졌다.

***

사무실은 1층 끝, 창고 옆에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쥐 냄새가 확 올라왔다. 도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먼지 쌓인 모니터가 놓여 있었다. 전원 버튼을 눌렀더니 부우웅 소리를 내며 켜졌다.

'전기가 살아있네.'

누군가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모니터에 CCTV 프로그램이 떴다. 녹화 파일이 날짜별로 정리돼 있었다. 도혁은 마우스를 잡고 오늘 날짜를 클릭했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굳어 있었다.

화면이 켜졌다.

2층 작업실. 아까 그 안경이 놓인 자리가 정확히 중앙에 잡혀 있었다. 타임스탬프는 새벽 4시 23분.

문이 열렸다. 민재 형이 들어왔다.

"형님..."

도혁은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민재는 혼자였다. 천천히 작업실 한가운데로 걸어와 멈춰 섰다. 그리곤 안경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조심스럽게. 마치 제단에 제물을 바치듯이.

그리고 중얼거렸다.

"도혁아, 미안하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민재는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검은색 자동권총. 백호파 간부들이 쓰는 그 총이었다.

천천히 총구를 자기 머리에 갖다 댔다.

"형님, 안 돼—"

도혁은 모니터를 향해 소리쳤지만 화면 속 민재는 멈추지 않았다. 손가락이 방아쇠에 걸렸다.

그 순간.

도혁은 영상을 일시정지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귀에서 터질 것처럼 뛰었다.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대체..."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손가락이 멈춰 섰다.

'잠깐.'

뭔가 이상했다.

도혁은 영상을 되감았다. 민재가 총을 머리에 대는 장면. 한 프레임씩 천천히 재생했다.

그림자 방향이 이상했다.

작업실 창문은 왼쪽에 있었다. 그럼 그림자는 오른쪽으로 져야 정상이었다. 근데 민재의 그림자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조명이 따로 있었나?"

천장을 확인했다. 형광등은 꺼져 있었다. 자연광만 들어오는 상태였다.

'그림자가 반대야.'

도혁은 다시 영상을 돌렸다. 이번엔 민재의 손을 집중해서 봤다.

총을 쥔 손이 떨렸다. 근데 그 떨림이 이상했다. 사람이 긴장해서 떠는 게 아니라... 마치 영상이 끊기듯이 뚝뚝 끊어지며 떨렸다.

'합성이야.'

등골이 오싹해졌다.

누군가 이 영상을 조작했다. 민재 형이 스스로 죽는 것처럼 꾸민 거였다.

"씨발."

도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을 발로 걷어찼다.

모니터가 덜컹거렸다. 화면 속 민재는 여전히 총을 머리에 댄 채 멈춰 있었다.

'누가 이걸 만들었어?'

도혁은 마우스를 집어 던졌다.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진정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개새끼들."

반말이 튀어나왔다. 공손함 따윈 이미 박살난 지 오래였다.

누군가 민재를 납치했다. 그리고 도혁에게 이 영상을 보라고 남겼다. 왜? 민재가 스스로 죽었다고 믿게 하려고? 아니면 도혁을 여기로 유인하려고?

'유인.'

등골이 서늘해졌다.

도혁은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복도는 여전히 어두웠다. 그런데 아까 없던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천천히, 규칙적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였다.

도혁은 권총을 빼 들었다. 안전장치는 이미 풀려 있었다. 문 옆으로 붙어서 숨을 죽였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복도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두 명이었다.

"형님, 여기 있습니까?"

목소리가 익숙했다. 황태식 밑에서 굴러다니는 놈들이었다.

'씨발, 미행당했나?'

도혁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면 애초에 황태식이 여기로 보낸 건가?

"차가 밖에 있던데요. 안에 계신 거 맞죠?"

대답 대신 도혁은 문 뒤에서 튀어나왔다.

총구가 먼저 앞섰다.

"엎드려, 새끼들아."

두 놈이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한 놈은 손을 들었고, 다른 놈은 품에 손을 넣으려다 멈췄다.

"손 까딱하면 머리통 날린다."

도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형님, 오해십니다. 저희는 그냥—"

"닥쳐."

도혁은 한 발 다가섰다. 총구가 놈의 이마에 닿았다.

"누가 보냈어?"

"황태식 형님이..."

"왜?"

"그냥 형님 찾으라고 하셔서..."

거짓말이었다. 눈빛이 흔들렸다.

도혁은 총을 내렸다. 대신 주먹이 날아갔다.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놈이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혔다. 다른 놈이 품에서 뭔가 꺼내려는 순간, 도혁의 발이 놈의 손목을 짓밟았다.

"크윽!"

손목이 꺾이는 소리가 났다. 권총이 바닥에 떨어졌다.

도혁은 그걸 주워 허리춤에 꽂았다. 그리곤 놈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다시 물어볼게. 누가 보냈냐?"

"진짜... 황 형님이..."

도혁은 놈을 벽에 처박았다. 뒤통수가 콘크리트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거짓말하지 마. 황태식이 왜 날 찾아? 전화 한 통이면 되잖아."

"형님이... 형님 핸드폰 GPS 추적하라고..."

'추적?'

도혁은 놈을 놓았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설정을 확인했다.

위치 서비스가 켜져 있었다.

'이게 언제...'

분명 어제 껐었다. 항상 끄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켜져 있었다.

누군가 만졌다는 얘기였다.

"누가 내 폰 건드렸어?"

"모릅니다, 진짜로..."

도혁은 놈의 멱살을 다시 잡았다. 이번엔 주먹이 아니라 권총을 들이댔다.

"세 센다. 하나."

"형님, 진짜 모릅니다!"

"둘."

"어제 회식 때 민재 형님이...!"

도혁의 손이 멈췄다.

"뭐?"

"민재 형님이 형님 자리 비울 때 핸드폰 만지는 거 봤습니다. 근데 저희도 왜 그러셨는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재 형이?'

말이 안 됐다. 민재가 왜 도혁의 핸드폰을 건드려? GPS를 켜서 누가 추적하게 하려고?

'아니면 애초에 민재 형이 날 여기로 유인한 건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혁은 권총을 내렸다. 놈들을 보지도 않고 돌아섰다.

"꺼져."

"예?"

"꺼지라고. 황태식한테 가서 전해. 나 찾지 말라고."

놈들이 허둥지둥 일어나 복도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작업실 바닥에 안경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도혁은 그걸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핏자국도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뭔가 더 있을 거야.'

민재가 남긴 게 안경뿐일 리 없었다. 영상을 조작한 놈도, 도혁을 유인한 놈도, 전부 뭔가 더 보여주려고 이 무대를 만든 거였다.

작업대 서랍을 열었다. 녹슨 공구들뿐이었다. 벽에 붙은 달력을 뜯었다. 뒤에 아무것도 없었다.

의자를 뒤집었다. 바닥을 두드렸다. 창문 틈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뭘 보라는 거야?"

도혁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민재가 배신했을 리 없었다. 10년을 같이 일했다. 아버지가 죽인다고 했을 때도 민재를 막아선 건 도혁이었다. 그 뒤로 민재는 도혁한테 목숨을 맡겼다.

'그런 형이 날 팔아?'

말이 안 됐다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을 있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민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도혁아, 미안하다.'

왜 미안해? 뭐가 미안한 거야?

도혁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작업대 모서리에 뭔가 반짝였다.

USB였다.

"이게 왜 여기..."

작업대 밑으로 기어갔다.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검은색 USB. 겉면에 하얀 라벨지가 붙어 있었다.

'4화'

손이 떨렸다.

도혁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USB를 주머니에 넣으려다 멈췄다.

'지금 봐야 하나?'

아니, 일단 나가자. 여기 있으면 위험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황태식이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울렸다. 또 씹었다.

세 번째 진동이 울릴 때 문자가 왔다.

**"민재 형 찾으러 왔어? USB는 안 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어떻게 알아?'

CCTV. 황태식도 보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도혁은 주변을 둘러봤다. 1층 천장 구석구석에 카메라가 숨어 있었다. 빨간 불빛이 깜빡였다.

"씨발."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에 차가 한 대 더 서 있었다.

검은색 제네시스. 황태식 차였다.

보닛 위에 황태식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왔네."

도혁은 걸음을 멈췄다. 손이 허리춤으로 갔다.

황태식이 손을 저었다.

"총 꺼내지 마. 나 혼자야."

"무슨 일입니까?"

"존댓말은 관두고."

황태식이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너 지금 화났잖아. 반말해."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황태식이 차에서 내려왔다.

"USB 찾았어?"

"..."

"찾았구나. 근데 왜 안 봐?"

"볼 겁니다."

"언제?"

"지금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황태식이 피식 웃었다.

"겁나?"

도혁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뭐가 들었는지 물어보지 그래?"

"알려줄 겁니까?"

"아니."

황태식이 담배를 바닥에 비볐다.

"근데 보기 전에 물어볼 게 하나 있을 거야."

"뭡니까?"

"민재 형이 왜 여기 왔는지."

도혁은 입을 다물었다.

황태식이 차에 기대섰다.

"10년 전 얘기 할까?"

등골이 서늘해졌다.

"네 아버지가 처음 죽일 뻔했던 사람 기억나?"

"..."

"민재야."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도혁은 한 발 다가섰다.

"무슨 개소리야?"

"개소리 아니야. 2015년 3월, 바로 이 공장에서."

황태식이 건물을 올려다봤다.

"네 아버지가 민재 형 끌고 왔어. 배신했다고. 돈 빼돌렸다고."

"거짓말."

"CCTV 남아 있어. 1층 창고 쪽에."

도혁의 주먹이 떨렸다.

"근데 말이야."

황태식이 도혁을 똑바로 봤다.

"그때 네 아버지 말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

"..."

"유진이야."

머릿속이 하얘졌다.

유진. 3년 전 죽은 유진.

"유진 누나가 왜..."

"그것까진 나도 몰라. 근데 네 아버지가 유진 말은 들었어. 민재 형 살려줬지."

황태식이 차 문을 열었다.

"그 뒤로 민재 형이 달라졌어. 너한테 충성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사실은 뭐?"

"USB 봐. 거기 다 나와."

황태식이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었다.

"아, 그리고."

창문을 내렸다.

"유진이 죽기 전에 네 아버지 만났어. 둘이 무슨 얘기 나눴는지는 나도 몰라."

차가 출발했다.

도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손에 쥔 USB가 뜨겁게 느껴졌다.

***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지 않았다. 그냥 운전대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민재. 유진. 아버지.

전부 연결돼 있었다.

'10년 전.'

2015년 3월. 작업실 달력이 멈춘 그 달.

도혁은 USB를 꺼내 들었다. 라벨의 '4화'가 손가락에 걸렸다.

핸드폰을 꺼냈다. USB 리더기를 연결했다.

파일이 하나 떴다.

[2015.03.17_창고.avi]

재생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누르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민재였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여보세요?"

잡음만 들렸다. 숨소리 같은 게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형님?"

대답이 없었다.

"민재 형님, 어디 계십니까?"

"...혁아."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형님!"

**"...USB... 보지 마."**

"뭐라고요?"

**"제발... 보지 마..."**

전화가 끊겼다.

도혁은 핸드폰을 귀에서 떼지 못했다.

다시 걸었다. 꺼져 있었다.

손이 떨렸다.

USB를 봤다. 재생 버튼이 눈앞에서 깜빡였다.

민재는 보지 말라 했다.

황태식은 보라고 했다.

도혁은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켜졌다.

1층 창고. 2015년 3월 17일.

아버지가 서 있었다. 손에 쇠파이프를 들고.

바닥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민재였다.

피범벅이 된 얼굴로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파이프를 들어 올렸다.

"이 개새끼가 감히 날..."

그때 문이 열렸다.

유진이 들어왔다.

**"그만하세요."

총 6,878자 · 약 14분

- 5 화 끝 -

AI 생성 콘텐츠 · 작가 남일욱

Powered by NtoTOON

다음 화 읽기 · 6화
남일욱

작가

이 작품처럼 나도 만들기

아이디어 한 줄이면 AI가 웹소설을 써드려요 · 가입하면 4컷 웹툰 4편 무료

나도 만들기

댓글 0

로그인하고 댓글 달기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